동방팬픽

Claire de Lune

교토대동방학과 2022. 5. 12. 19:29

[아우우우우우~~]

 

밤공기를 찢으며 울리는 익숙한 울음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세라, 서둘러 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수면으로 향한다.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머리 꼭대기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는 보름달. 여느 보름날보다 크고 아름답게 떠오른 그 자태를 잠시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또다시 그리운 네 목소리가 아까보다 선명하게, 애달프게 귀에 꽂혀온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시선을 내리자 은빛 조명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호숫가에 주저앉아 있는 네가 보인다. 빳빳하게 치켜든 목, 보고픈 임에게 버림받기라도 한 듯 축 늘어진 꼬리, 그리고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유리구슬 같은 눈물방울 똑 똑 흘리고 있는 애수에 찬 눈. 아아, 오늘도 역시구나. 보름날이 올 때마다 너는 항상 그러했다. 무엇에 그리 한이 맺혔는지, 가슴 속에 무엇이 그리 응어리 졌는지, 너는 항상 슬퍼 보였다.

 

언젠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네게 물어본 말들이 기억 속에 불현 듯 떠올랐다.

 

있지, 카게로는 왜 보름달을 볼 때마다 우는 거야?”

 

카게로는 늑대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고 한다면 역시 본능인걸까. 사냥 개시라던가, 동료를 모은다던가.”

 

종종 그런 목적도 있긴 한데 항상 그런 건 아니야~. 글쎄... 왜 그런 걸까.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왠진 모르겠지만 보름달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어. 그리움? 슬픔? 외로움?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그게 뭔지 모르면서도 계속 달을 갈망하게 되는 거야. 달을 손에 쥐게 되면 나를 사로잡고 있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코 이 두 손 안에 넣을 수도, 쥘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오늘도 너는 가질 수 없는 머나먼 존재를 쳐다보며, 닿지 않는 손을 계속해서 뻗고 있다. 아아, 저렇게 진실한 감정이 가득 담긴 네 눈동자를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네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아.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야. 네 진심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네 머리 위, 결코 고개를 숙이고 이쪽을 바라봐 주지 않는구나.

 

먼저 낙담하여 고개를 떨어뜨린 건 내 쪽이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너는 닿지 않는 존재에게 헛된 노력을 하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낙담한 적 없었으니까. 분한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문 내 시야에 달이 들어왔다. 그래, 달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었지. 저 밤하늘을 오롯이 품은 명경지수 안에도 달님은 존재한다.

 

바보 같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 왜 이쪽의 달은 봐주지 않는 걸까? 여기 있는 달은 얼마든지 그 가녀린 손을 뻗어 쥘 수 있는데. 비록 손이 닿으면 일렁이는 물결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상이긴 하지만 적어도 부질없이 허공을 휘젓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는다. 거짓된 잔상에 시선조차 주려하지 않는다. 너의 달님이 너를 봐주지 않는 것처럼, 나의 달님은 나를 봐주지 않는다.

 

문득 생각했다. 나 또한 너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너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너처럼 닿지 않는 손을 뻗으며 가망 없는 존재를 쳐다보고 있는 걸까.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인데도, 너는 저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닿을 수 없는 존재인걸까?

 

...아니, 나는 너와 달라. 나는 나의 달님에 닿을 수 있어. 이 손으로 달을 움켜쥘 수 있어. 내 힘으로 달을 손에 넣을 수 있어. 닿지 않는다고 느낀 건 지금까지 내가 이 손을 뻗길 주저해서 그런 것뿐이야. 저 달이 네 기다림에 부응하지 않듯, 너도 나의 기다림에 부응해주지 않겠지.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거야. 내 손으로 나의 달님을 손 안에 넣고 나를 바라보게 만들 거야.

 

호수를 가르고 네게 가까이 다가가도 여전히 너의 시선은 하늘을 향한 채, 내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누구보다 널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코앞에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너는 매정하구나.

 

나는 두 팔을 재빠르게 뻗어 나의 달님을 힘껏 움켜쥐고, 내 품 안으로 끌어 당겼다. 기껏 손 안에 넣은 달님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두 팔을 얽어 단단히 끌어안고, 그대로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품 안에서 요동치는 생명이, 온기가 느껴진다. 그 따스함에 미소 지으며 나는 달님을 마주 보았다. 이제야 나를 봐주는 구나. 괴로움, 분노, 공포, 원망, 루비처럼 빛나는 눈동자 아래에서 네 감정이 하나 둘 떠올라 내 눈 안에 담긴다. 처음으로 네 진심이, 그토록 그리던 달빛이 내게 닿는 순간이었다.

 

요동치는 물결과 물거품에 휩쓸려 수면 위의 달이 흐릿하게 일그러지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어. 진짜 달님은 하늘 위도, 물 위도 아닌 내 손 안에 있으니까.

 

영원히 함께하자, 나의 달님